Posts 바움가트너
Post
Cancel

바움가트너

정보

  • ISBN : 9788932925042
  • 출판사 : 열린책들
  • 출판일 : 20250430
  • 저자 : 폴 오스터

요약

● 2024년 4월 30일, 폴 오스터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생애 마지막 작품

기억과 삶, 상실과 애도, 우연과 순간을 엮어 나가며 삶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와 사랑에 대한 애틋한 사유를 전하는 폴 오스터의 빛나는 최종 장(章)

이것은 삶을 가득 채우는 부재와 지속되는 상실의 기록이다. 당연한 슬픔이 있지만, 단지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상실 속에서도 바움가트너는, 그리고 오스터는 상상력의 힘,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을 발견한다. 허구이지만 진실보다 더 강력한 그 무엇을. - 금정연(작가)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는 찬사 속에 데뷔하여 반세기 넘도록 소설과 산문 모두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견고히 자리 잡은 작가 폴 오스터. 그가 투병 중 끝을 예감하며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가 정영목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폴 오스터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작품은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상실과 애도, 기억과 현재,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를 내밀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삶의 막바지에 이른 작가의 원숙한 사유 또한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은 이 소설은, 이상한 사건 사고가 연달아 일어난 어느 날 까맣게 그을린 냄비를 바라보던 바움가트너에게 문득 인생의 사랑이었던 아내에 대한 기억이 점화되며 시작된다.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그의 성씨와 같이,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단편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소설은 1968년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처음 만난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그리고 뉴어크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양장점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까지 한 인물의 일생을 톺아보며 그의 내적인 서사를 따라간다. 폴 오스터가 평생 동안 다뤄 왔던 주제인 글쓰기와 허구가 만들어 내는 진실과 힘, 그리고 우연의 미학에 대한 사유가 간결하고 섬세하게 집약된 이 마지막 유작은 죽음 앞에서 써 내려간 상실과 기억에 관한 소설이기에 더욱 절실하고 강렬하다. 이제 폴 오스터라는 소설가를 떠나 보낸 독자들에게 바움가트너는 말한다. 〈그게 상상력의 힘이야,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


#바움가트너

리뷰

j***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름다운 작별, 따뜻한 환영, 삶을 껴안은 마지막 이야기!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야기를 통해 살아갑니다. 가장 사적인 고백이자 가장 보편적인 위로. 《바움가트너》는 그런 소설입니다.

📚《바움가트너》는 떠나는 자의 말, 그리고 남은 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읽고 나면 삶의 어떤 문장이 조용히 다시 쓰여지는 기분. 이별 이후에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이 소설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폴 오스터(1947–2024)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현실과 환상, 우연과 필연을 섬세하게 오가는 독특한 문체로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4 3 2 1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문학뿐 아니라 영화, 에세이, 번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으며, 우연의 철학자라 불릴 만큼 삶의 우발성과 존재의 사소한 조각들이 인생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천착해왔습니다.

또한 언어에 대한 깊은 통찰, 이야기 속 이야기, 삶의 균열과 문학의 치유력을 결합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바움가트너》 는 그가 암 투병 중 집필한 유작으로, 오스터의 문학적 사유가 가장 짙고 농밀하게 응축된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상실과 그로 인한 내면 여정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이는 폴 오스터 자신의 고별사로도 읽힙니다. 바움가트너가 문학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기억을 복기하는 존재인 만큼 이 소설은 자전적이면서도 허구적인,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선 폴 오스터 자신일 수 있습니다.

또한 꿈의 힘, 연결된 존재들, 우연한 순간의 진실 같은 오스터 문학의 핵심 개념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그의 전작들에 대한 친숙함이 있다면 더 깊은 울림이 가능할 것입니다.

《바움가트너》는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가 상실을 껴안은 채 살아가는 나날 속에서, 우연히 떠오른 기억들과 마주하며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설입니다. 그 자체로 작가의 마지막 인사이며, 고요히 덧칠된 사유의 초상입니다.

삶과 죽음, 부재와 존재, 기억과 애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성에 대해 고요하지만 집요하게 탐색하는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작가의 마지막 인사이자 문학적 유언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절망으로 침잠하지 않고, 삶의 끝자락에서도 꿈의 힘을 발견하며 다시 걸어 나아가는 가능성을 조용히 노래합니다.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평범한 아침그 시작은 까맣게 그을린 냄비 하나였습니다. 불시에 찾아온 사건은 오래도록 억눌러졌던 기억과 감정이 솟구치는 계기가 됩니다. 냄비는 타버렸지만, 기억은 타지 않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는 여전히 아내 애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 상실은 지금도 현재형으로 이어집니다.

📌“거실 맞은편의 시커메진 알루미늄 냄비를 계속 보고 있자니…”

이 소설은 단선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이 끊임없이 오갑니다. 이처럼 한 장면은 불에 그을린 냄비에서 시작되었고, 다음 장면은 갑작스레 아내와의 첫 만남으로 흐릅니다.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삶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눈물보다는 그녀가 그립다, 그게 전부예요.라는 담담함입니다.

그의 상실은 전형적인 슬픔과는 다릅니다. 그는 허우적거리거나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란 고통을 느끼는 것이며, 고통을 피하는 것은 살아 있음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담백한 인식은 독자로 하여금 진정한 애도의 형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스터는 📌“죽음의 입구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 상실과 부재가 오히려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통찰을 전하고자 합니다.

삶의 말미에 우리는 비로소, 덧없음과 우연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그는 허구가 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는, 문학의 본질에 대한 신념을 고스란히 남깁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은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그 말도 안 되는 장면은 꿈처럼,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불안정하고,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고, 감정은 더욱 격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상실이고, 진짜 애도였습니다. 그 모든 모순과 허구의 조각들이 결국 한 사람의 감정적 진실을 증명했습니다.

📌“그게 상상력의 힘이야,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

이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요약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잃은 것을 다시 만나는 장소는 현실이 아닌, 이야기이며, 상상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죽음을 다룬 책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책입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연결, 애도와 기억의 반복, 작가로서 허구의 힘을 믿는 태도까지, 폴 오스터는 이야기의 힘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습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음을 하나의 끝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바라봅니다. 그것은 아무 데도 아닌 거대한 곳일 수 있지만, 남은 이들이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연결은 이어집니다. 폴 오스터는 이야기의 힘, 꿈과 허구가 가진 힘으로 죽음과 상실의 절망을 넘어섭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허구가 감정의 진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바로 연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없다면 삶은 공허합니다. 하지만 연결된 순간,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한 가치를 갖습니다. 폴 오스터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듯, 바움가트너의 목소리를 통해 그 사실을 되새깁니다.

삶은 결국 타인과의 연결입니다. 사랑이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엉켜 살아가는 것. 2025-04-21 21:28:50.325724
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바움가트너의 의미는 독일어로 나무를 가꾸는 사람, 정원사를 뜻한다. 폴 오스터의 유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살아 있는 이의 기억을 돌보고, 사라진 이의 자리를 가꾸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상실의 아픔보다는 희망을 느끼게 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이 소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남겨질 아내를 위한 다정한 이별 지침서로 다가온다. 평생 존재론적 질문과 정체성, 우연, 언어의 구조 같은 걸 다룬 작가의 마지막으로 남긴 투박스럽지만 사려 깊은 사랑 고백을 따라가보자.

시모어 바움가트너는 일흔이 넘은 철학자이자 교수이다. 아내 애나는 활동적이고 고집스러운 인물로 궂은 날씨에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나갔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녀를 잃은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가 남긴 시를 정리하여 출판 준비를 하면서 보낸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은 물론 그보다 더 이전의 부모의 어린 시절부터 회고하며 아내와의 추억 전반을 돌아본다. 아픔뿐인 이별이 전화 통화 한 번으로 인하여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는 읽기에 따라 철학적인 요소로도, 감정 윤리적인 요소로도 읽힌다. 에브리맨, 제5도살장, 선셋 리미티드를 번역하신 정영목 님은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그동안 작가의 성향 그대로 분석, 철학적으로 해석을 하셨다. 그러나 몸이 아프기 시작한 2022년부터 집필을 하였으며 그해 말에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2023년 3월에 영문판으로 작품이 출간된 것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이 작품만큼은 감정·윤리적인 해석을 해본다.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는 58세의 아내를 사고로 떠나보내고 상실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70대 노년 남성의 이야기다. 이제 곧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정리하는 동시에 자신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선율은 두 갈래로 흐른다. 하나는 자신의 삶을 되짚는 회고록의 선율이고, 다른 하나는 이별을 미리 연습하는 사랑의 선율이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철학적인 작품이 되고, 후자에 초점을 맞추면 다정한 이별 지침서가 된다.

처음 아내가 죽고 난 후 바움가트너는 살아 있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존재로 지낸다. 두뇌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심장은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어느 날 밤 연결도 되지 않은 전화가 울리며 그 안에서 애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공허한 공간이며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는 한 그곳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물론 이 작품이 판타지물이 아니기에 이것은 주인공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지 못한 꿈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사건 이후 자신이 온전하게 살아 있어야 애나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 최대한 건강한 삶을 유지한다. 그녀를 더 기억하기 위해 과거 그녀의 시를 찾아 읽어보고 그녀와의 연애 시간도 회상한다. 그들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부부로 평생을 지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성격이 달랐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감정형에 가까운 애나, 내향적이며 이성적 사고형에 가까운 바움가트너. 둘은 의외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

과거를 떠올리며, 그녀의 시를 보며 그는 아내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내가 다시 사라지지 않고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전화 한 통으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은 그는 점차 심장도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며 살아 있는 시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이런 과정만을 뽑아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보면 그 삶의 방식 자체가 폴 오스터가 남겨질 아내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작별의 언어가 된다. 나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언제까지나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무언의 포옹이랄까?

또한 우크라이나 땅에 전해 내려오는 스타니슬라프의 이리들이라는 이야기를 그곳의 시인에게 들었을 때 그는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무작정 믿는다고 선언한다. 물론, 이것을 역사적 사건에 대입하자면 단순하게 역사적 기록물은 없지만 나타난 현상이 있으므로 신뢰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애니에게로 대입하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 전화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가 말한 세계에 대한 증언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 전화를 믿기로 한다. 그것은 현실을 증명하려는 태도라기보다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믿음의 방식이다. 마치 누군가는 사라진 이리 떼를 믿고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 전화 한 통을 믿는 것처럼. 아내가 이 글을 믿어준다면 이별의 아픔 속에서도 헤매지 않고 조금은 다르게 나와 연결된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다정한 당부가 아닐까?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에서 등장하는 작품인 운전대의 신비는 언뜻 보면 육체와 영혼, 실체가 없는 어떤 것과 실체를 다룬 것처럼 보인다. 물론 철학적으로는 이런 해석이 맞다. 그러나 이 또한 아내를 겨냥한다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이 작품에서 실체인 몸을 자동차로, 실체가 없는 영혼을 운전자로 비유하였다. 조금 더 독자가 쉽게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오토라는 뜻 안에 자기라는 의미가 있으며 모터라는 말에 운동 근육이나 신경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터는 자율주행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내고 차 안에 탄 가족이 모두 죽는다. 이때 바움가트너는 곧 발표될 경찰 공식 보고서가 참사의 원인을 인간(영혼)의 과실로 명시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인간은 영혼이다. 그는 다정하게 협박한다. 자율주행의 실패는 결국 영혼의 실수로 기록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녀가 흔들리면 그의 존재 역시 그 어디쯤에서 참사를 맞게 된다며 너무 상실의 아픔에 휩쓸리지 말라며 평소에 그답지 않은 남겨질 아내를 위한 다정한 이별 지침서를 남긴다. 2025-04-20 20:29:38.101845
h***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요즘 또 다른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 나에게로 왔다.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이해 시작하는 하루, 또 다른 평소와는 다르게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는 바움가트너. 그러다 자신의 과거에 빠져든다. 정말 사랑했던 아내, 새로운 사랑, 부모님 등등..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딘가에 바움가트너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 저 사람은 저런 삶을 살아오면서 삶이란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구나.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한번 사는 인생 크게, 멋지게 살아보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일을 저질렀다가 정말 “큰 코”를 다쳤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게 사는 건가? 삶을 산다는 게 내 몸을 갈아서 명예를 얻어보려는 것? 그건 나에게 맞지 않는 삶이었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흐름과 속도가 있는데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느리고 차분한 게 잘 맞는 사람인데 남들과 비교하며 내 속도도 모른 체 따라가다 보니 고장이나 버린 것이다.

나는 나에게 맞는 속도로 차근차근 다시 나아가려고 한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까 무섭지만 삶이라는 것이 있기에 잠깐 쉴 수는 있지만 멈춰있을 수는 없기에 나는 나아간다.

모두 개개인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흐름으로 탈 나지 않게 한걸음 한걸을 나아가길 빌면서. 2025-04-20 13:51:38.449745
h*** 출판사 제공 도서 (가제본 서평단77)

뉴욕3부작 달의궁전 등으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미국 문학계의 수퍼스타로 불린 소설가 폴 오스터가 202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견고히 자리 잡은 작가 폴 오스터는 그의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 가 출간되기 전에 가제본을 미리 받았습니다.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사랑과 상실, 기억과 우연, 나이듦과 삶의 의미 등을 농밀하게 다룬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기대가 됩니다.

처음 맞는 좋은 봄날이죠 - 연중 최고의 날이에요.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자고요. 몰리. 다음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절대 모르는 거니까. —p.9

정원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을 걸으며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1968년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처음 만난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뉴어크에서의 어린 시절, 옷 가게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폴란드 출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까지 여러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펼쳐 보이며 한 인물의 내적인 서사를 따라간다.

아내 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작품 곳곳에는 죽음에 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라고 표현합니다.그 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냄비에 손을 데어보니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 속에서 아, 나는 깨어 있구나! 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죽음 뒤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 데도="" 아닌="" 거대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75

애나의 타자기는 책상에서 튀어나온 마호가니 판자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애나의 시집을 묶는 기획에 뛰어들면서 혼란 속에 맞닥뜨린 삶을 오로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려고 하는 모습과 사람은 떠났어도 남기고만 물건들의 소중함을 또 느낍니다. 이 작품은 인생의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한 바움가트너라는 인물을 통해 이전 같지 않은 나이 들어 가는 몸과 더불어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프랭키 보일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군에 들어가지만 베트남 정글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건축일을 하는 플로레스는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습니다. 어떤 이는 꿈을 꾸고 또 어떤 이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 슬픔과 힘듦은 각기 다르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어떤 방식으로 상실을 애도하고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지를 겪어보지 않으며 잘 모릅니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의 주제가 삶과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독자에게 알려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자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생애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는 기억과 삶, 상실과 애도를 느끼기에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입니다.

2025-04-18 07:34:40.560344
z*** 삶의 마지막은 어떻게 도래할까.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누구라도, 감히 절대로 알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죽음일 것이다. 심장이 멎고 더 이상 이 다음에 내쉬는 숨을 떠올릴 수 없다는 그 감각 말이다. 평생을 함께한 이가 바로 곁에서 그 순간을 맞이한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감각할 수 없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재의 감각일 뿐이다. 아, 그렇지. 이젠 없지, 하고. 멈춰서게 하는 그 느낌.

언제 어떤 형태로 도래할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살아 숨쉬는 것이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멈추지 못하는 채 나아갈 뿐이다. 그 시간은 마치, 어느 시기엔 으레 그렇듯, 한순간에 변신하거나 이전까지의 모습을 깡그리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 살이 돋고 두께를 더하는, 그래, 마치 조개나 나무의 테와도 같이 쌓여가는 것이다.

p.41 솔직히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고, 왜 하필이면 나냐, 하고 하늘을 향해 신음을 토하지 않아요.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p.104 바움가트너에게는 애나와 함께 산 그 모든 세월 내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것 이상이었다. 지금도, 자식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면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충분한 것 이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다.

제목인 동시에 주인공인 바움가트너, 평범한 노인이자 은퇴를 앞둔 교수, 그의 일상은 대개 그러하듯 단조롭고 고요하다. 이상하게도 크고 작은 사고가 연달아 일어난 어떤 날, 그래, 평범한 날만 빼고. 까맣게 태워먹은 냄비를 바라보던 그에게 탁, 하고 불이 들어오듯, 아니,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점화된 빛이 순식간에 줄을 잇고 번져나가듯 세상을 떠난 아내의 기억이 밀려온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 뿐, 당장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벅차던 나날, 그럼에도 이 사람이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어떻게든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을 함께한 평생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p.141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살펴본다든가.

p.18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지금에서, 한순간의 사고를 아내를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삶은 통증이었다. 환상임에도 더욱 생생하고 고통스럽게 달라붙는 환지통과 같은 그리움. 이대로 안고 살겠거니, 얼마쯤 고여있는 마음을 출렁이며 꼭 하루씩을 느리게 이어가는 삶. 그에게 과거가, 아니, 여전히 현재인 기억이 숨막히게 피어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진짜 현재가.

새로이 도전하는 사랑, 아내의 업적을 존경한다는 젊은 학자, 아, 맞아, 냄비, 그리고 오래 비워둔 집… 그렇게 이야기는 그 자신의 것처럼, 제목에서 시작해 다시 처음으로, 아니. 생의 한가운데, 어느 날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돌아나온다. 착시를 일으키는, 현실에 존재할리 없다는 어떤 형체처럼. 이것은 막다른 길이 아니다. 하모니다. 하나씩, 살며시 쌓여가는 멜로디처럼.

p.197 그러자 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장을 성큼성큼 달려가는, 버려진 도시에서 먹이를 찾아 작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이리 수십 마리. 이리가 악몽의 종료점이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전쟁의 참화를 낳은 어리석음의 가장 마지막 결과물이다. 이 경우에 그 참화란 동부의 그 피의 땅에서 유대인 3백만 명이 다른 종교를 가진 또는 종교가 없는 다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이나 군인과 함께 살해당한 것. 학살이 끝나자 흉포한 이리들이 도시의 문을 통해 밀고 들어온다. 이리는 단순히 전쟁의 상징이 아니다. 전쟁이 낳은 것이자 전쟁이 이 땅에 가지고 오는 것이다.

어떤 마음은 너무 무거워 선명하게 드러낼 수 없다. 꿈결과 상상의 힘을 빌어서만 간신히 이렇게, 속삭이며 희미한 형태로 내보일 뿐이다. 그러니 작품 전체에 들릴 듯 말 듯 이어지는 멜로디는 슬픔이다. 의식의 얕은 수면 아래에서 파도에, 바람에 문득 떠오르는 상실과 부재의 감각이다. 깊고 길고 느리게 이어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4 3 2 1에서 드러낸 초장편의 기백에 매달리는 독자에게 삐뚜름한 웃음 한 주먹을 건네듯 짧은 이야기에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이 오롯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뜨겁게 달아올라 흐려진 상태로는 알 수 없는, 가만히 가라앉히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마음이. 자전에 가까운 이 이야기가 결국, 오래된 자리, 희미한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는 마음이려니, 한다.

p.74 바움가트너는 전화에서 수화기를 들어 올리고 당황하여 자신 없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를 내뱉어 본다마지막에 물음표가 붙은, 여보세요. 정적이 뒤따르자,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깨어 있으니 꿈일 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혼잣 말을 한다. 그때 애나가 그에게 말을 한다, 살아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 다름 아닌 그 울림이 큰 목소리로 말을 한다.

p.242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도서제공 열린책들 2025-04-18 01:23:03.809887
j***

타계 1주년이 곧 다가오는 저자의 마지막 소설인 바움가트터-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70대 교수 바움가트너라는 인물을 통해 삶의 기억과 상실, 사랑,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인연에 대한 흐름들을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그가 아침에 겪는 일련의 작은 사건들, 여기에 이와 연결된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각기 다른 시간 속에 자신의 부모부터 아내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그녀가 죽기까지 겪은 상실감들이 스쳐 지나가 듯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것으로 흘러간다.

이는 마치 어떤 일을 하다가 갑자기 과거에 이와 비슷한 경험이나 만났던 사람들, 헤어짐과 연결관계를 통해 인생을 회상하고 현재의 시간들의 복합적으로 함께 이어지는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서로가 사랑했던 부부, 아내가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는 시간들은 자신 곁에 유일한 존재로 남아 있던 이의 부재가 몰고 온 상실감들, 이어 자신을 추스르며 제2의 사랑하는 이가 나타났지만 이 역시도 쉽지만은 않은 만남이란 사실과 죽은 자는 현실 속에서는 없지만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서는 살아있다는 사실들을 통해 남겨진 자와 떠난 자간의 추억과 기억의 시간이 주는 애도의 기간이란 사실을 느끼게 한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작품 속에서도 드러나는데 유대인으로서 그가 기억하는 부모의 삶과 자신의 뿌리의 가계도는 물론이고 여기에 애나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연결고리의 소재로써 이어지는 그럼으로써 인생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연결이란 것이 바움가트너와 애나 및 부모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그가 쓴 운전대의 신비라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내가 남긴 작품들을 매개로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모습들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검침원의 만남과 함께 새롭게 다가올 기대감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품 속에서 보인 자연스러운 연결흐름들은 저자가 바라보는 인생철학의 한 부분으로도 느껴질 만큼 짧은 분량이지만 인생의 면면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들이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진행이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잊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흔적과 그 흔적으로 인한 상실감, 이것 또한 인생의 자연순리대로 흐른다는 것과 다시 새로움이란 기대가 있기에 인생은 유유히 흐르는 강과 같다는 것을 느껴본 작품이다.

출판사 협찬으로 쓴 리뷰입니다.

2025-04-16 20:45:38.097886
k*** 이 작품은 바움가트너의 인생 마지막 챕터로서 폴 오스터의 작가적 유언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바움가트너와 애나 모두 작가로서 문학은 표현 도구일 뿐 아니라 상실을 견디는 구조물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도 여전히 그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조용한 고백이자 문학을 통한 구원의 기록입니다. 2025-04-16 14:55:50.911357
p*** 《바움가트너》는 죽음과 상실, 기억에 대해 아주 조용한 언어로 말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아내를 잃은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슬픔은 서서히 스며든다. 그는 다른 사람을 좋아해보지만, 아내와 닮은 무언가를 찾고, 그녀를 잊지 않으려는 한 학생을 기다리며 그리움을 붙잡는다. 이야기는 시간 순서 없이 흘러가고, 생각의 리듬을 따라 감정이 툭툭 튀어나온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바움가트너의 철학적 저작은 결국 그에게 사고로 이어지며, 지나친 사유와 기억 또한 삶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2025-04-16 10:58:52.298311
y*** 지난 34년 동안 프린스턴에서 사랑받아 온 바움가트너 교수(p81). 키는 185cm 정도이며(p72), 그에게는 이제 곁에 아내가 없습니다. 아니, 있습니다. 분명 있는데, 다만 그 연장(延長)이 이제 없을 뿐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75에 나오는 연장이라는 말은, 최고의 번역가 정영목 선생이 역주에서 설명하는 대로 데카르트가 썼던 용어입니다. lextension이 불어 원어인데 영어로도 그냥 extension이라 씁니다. 대륙 합리주의의 완성자답게 그는 본질이 따로 있고, 그 본질이 차지하는 물리적 실체는 그저 연장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바움가트너 교수님이 사랑하던 부인 애나는 사망했지만, 이는 단지 육신, 연장이 소멸했을 뿐 그녀는 여전히 교수님의 마음과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그 본질이 이렇게 뚜렷이 그의 곁에 있는데 고쟉 그 연장이 땅에 묻혔다 한들 어찌 감히 누굴 죽었다고 평가하겠습니까.

p35에는 환지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도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환상통, 유령 감각 같은 말이 더 익숙할 텐데, 영어 원어로는 phantom pain이라고 하며, 손가락이나 팔, 다리 등이 (사고 등으로) 잘려나갔는데도 여전히 그 부분에 아픔을 느끼는 현상을 뜻합니다. 물론 고통이란 실제로도 팔다리가 느끼는 게 아니라 뇌가 그리 느끼는 것이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limb에 대해 아픔이 느껴진다는 게 어쨌든신기한 일입니다. 내 팔다리란 그만큼 나한테 소중했기에 없어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기이하게도 이게 저 데카르트적 의미에서 연장과도 통합니다.

바움가트너 교수에게 아내의 부재는, 잘려나간 손가락이 두뇌에 보내는 환지통과도 같으며, 교수에게는 여전히 아내가 곁에 있는 셈이기에 이걸 환상이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역시 똑똑하신 지성인이라서 배우자의 사별로 인한 아픔도 대단히 형이상학적으로 체험하고 또 표현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고 수준의 은유적 적합성(p68)입니다. 농담이고, 소설 전반을 꿰뚫는 슬픔과 허무함은 어지간히 무딘 독자의 마음에도 환지통을 전염, 전파하기에 충분할 만큼 절절합니다. 폴 오스터 특유의 문체의 힘이며 공교롭게도 이 소설이 그의 유작이기에 더욱 페이소스의 농도가 짙습니다.

시모어 티쿰셰 바움가트너. 사실 Baumgartner라는 독일계 이름을 쓰지만 사실 할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이었으며 부친 야코프(제이컵)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을 때 고작 여섯 살이었다고 p153에 나옵니다. 아버지는 그리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바움가트너 교수 역시 밀턴 프라이버그 등 진보 성향 일색인 교우관계에 싸였던 인생이었습니다. 미국에도 진보주의자들은 특히 교육 받은 이들 중에 많았으며 1939년의 독소 불가침 조약은 그들에게 어지간히 충격을 주었나 봅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은 그들의 삶에 직접 피해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미국인 기준으로도 170cm의 키는, 더군다나 1940년대라면 여성에게 작은 키가 아닙니다. 196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 오드리 헵번도 당시에 장신이라고 했는데 저 정도입니다. 애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잘했고 힘도 세었던 편이지만 2차 성징이 나타나고 호르몬이 제대로 작용한 후 비교도 안 될 만큼 근육량이 늘고 강해진 남자 아이들과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습니다. p46을 보면 주제를 모르고 감히 남자들과 육체적으로 경쟁하려 나선 애나가 잔인하게 조롱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영목 선생이 역주에서 설명하는 대로 bite the dust는 쓰디쓴 좌절을 가리키는 관용 표현입니다. 그룹 퀸의 노래 제목도 있었죠.

하지만 프라이버그가 스페인 내전 당시 의용군에 들어가 파시스트 돼지들을 박살내려 들고 악마와 손을 잡은 스탈린을 바로 손절쳤듯이, 이들(애나의 첫사랑인 프랭키 보일도 포함)은 대체 마르크스적인 기계의 법칙과 그리 잘 맞는 심성들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육신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기꺼이 대의를 위해 희생하려 들기도 했죠. 그들은 본래 사람 됨됨이들이 그랬던 것입니다.

가스 검침원 에드에게 그냥 사이라고 부르세요.라고 할 때(p15) 바움가트너 교수는 참 소탈해 보입니다. 시모어가 어떻게 Sy(사이)로 줄여지는지 이상할 수 있으나 Seymour Tecumseh Baumgartner라는 원 철자를 보면 납득이 될 것입니다. 가스 검침원은 우스꽝스럽게 긴 그리스식 성씨를 부끄러워하고 교수는 시모어가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만(이 이름은 양성적입니다), 사실 독자인 제게는 티쿰셰가 더 눈에 띄었습니다. 인디언 추장의 저 이름을 이상하게도 미국 백인들은 좋아합니다(제각각의 이유에서). 교수는 가스 검침원이 자기 이름을 잘못 읽었을 때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다지만, 사실 Baumgartner는 에드가 했듯 읽힐 가능성이 미국에서는 훨씬 크죠. 뭘 그 연세에 새삼스럽게요. p190에는 오스터(!)라는 이름이 스타니슬라프 유대인에게는 흔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소중합니까. 연장입니까, 아니면 그 이름입니까. 2025-04-30 13:27:33.072578
a*** 기대되는 책이네요 2025-04-30 12:17:07.960053
c***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폴 오스터의 생애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

사이 바움가트너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잃었습니다 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바움가트너의 시간은 멈춘 채로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로 10년을 보내게 됩니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될 것입니다 이미 그 고통을 겪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고통입니다

사이 바움가트너는 그 고통을 환지통이라고 말했어요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 사라진 팔다리가 아직 그대로인데 너무 아픈 상태 말입니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요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의 유작입니다 폴 오스터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생애 마지막 작품입니다 폴 오스터가 투병 중 끝을 예감하며 집필하였는데 폴 오스터는 죽음을 앞두고 바움가트너를 집필하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바움가트너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갑니다 바움가트너의 심리 묘사가 생생하여 우리가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사람의 마음과 고통이 정말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 바움가트너는 죽은 아내 애나의 작업실에서 전화 소리를 듣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는 애나였습니다 다시 들을 수 없다 생각했던 애나가 살아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했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애나의 전화를 받은 이후 사이 바움가트너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사이 바움가트너가 현재에 충실하기로 결심하며 그의 삶에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나의 일부로서 내가 잊지 않는 한 여전히 나에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습니다 폴 오스터가 투병 중 작성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에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전화 이후 다시 삶을 시작한 바움가트너처럼 그를 잃어도 그의 가족들이 슬픔에 잠식되지 만을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시인,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인 폴 오스터입니다

10년 전 아내를 읽고 환지통을 겪듯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애도와 그리움, 기억과 현재,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를 내밀한 시선으로 그려 낸 폴 오스터의 소설 바움가트너입니다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는 찬사 속에 데뷔한 폴 오스터는 마법과도 같은 문학적 기교와 번뜩이는 재치, 날카로운 관찰력과 심오한 지성을 바탕으로 인간사의 다채로운 면모를 그려 내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폴 오스터가 전하는 마지막 인사 바움가트너 2025-04-30 10:50:38.022096
q***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철학과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애도와 회복의 여정을 담은 폴 오스터의 유작이에요. 사방으로 흩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결국 한 사람의 삶과 사랑으로 응축되는 깊은 문장들이 인상적입니다. 2025-04-29 23:23:48.636254
s*** 기대되는 책입니다 잘 읽을게요 2025-04-29 23:15:35.743615
k*** 마지막 폴오스터의 책 너무 이쁘게 잘 만들어졌네요 2025-04-28 14:37:24.764021
e*** 외국 작가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지만, 읽다 보니 그 느린 호흡과 고요한 문장이 오히려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잃고도 계속 살아간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를 떠올리고, 말을 건네고, 때로는 그녀의 존재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리움이 꼭 슬픔으로만 다가오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책이 잘 보여준다. 그 감정은 어느 날의 커피향처럼, 낯선 길의 햇살처럼 문득 찾아온다.

바움가트너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공감된다. 아내를 기억하는 장면들에서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상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며 곁에 두는 것이라는 걸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작가의 문장이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상실과 사랑, 시간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떤 대사보다 그 침묵의 여운이 더 크다.

책을 덮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부재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바움가트너의 이야기는 먼 나라의 노인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담담하게, 그러나 오래 남는 여운을 주는 소설이었다.

도서제공 2025-04-25 21:49:58.975517
i*** 📃

< 바움가트너 >

▪️ <폴 오스터의="" 마지막="" 인사="" 책="" 소개="">

  • 10년 전,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노교수 바움가트너.

아내의 부재 속에서 조용히 삶을 이어가던 중,

아주 사소한 사건들을 계기로 오래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타버린 냄비와 아내의 글들.

그 흔적들은 바움가트너를 과거로 이끌고, 상실의 고통을 바라보게 만든다.

▪️

✔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p.37)

✔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p.67)

  •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도 아닌 애도가 그대로 담겨 있는 느낌.

바움가트너가 느끼는 상실의 고통은 환지 통과 같다.

곁에 있던 누군가는 사라졌지만, 고통은 여전히 존재한다.

서사가 뚜렷한 소설은 아니다.

아내에 대한 기억, 부모에 대한 기억 등 기억을 따라 이야기는 펼쳐진다.

▪️

✔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p.68)

  • 이 책을 읽으면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의 매개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기억은 고통처럼 존재하지만, 그것을 마주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기억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위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p.151)

  • 책은 기억, 애도, 연결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억함으로써 떠나간 이들은 영원히 곁에 머물 수 있고, 그리움과 고통의 애도 과정을 거쳐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통해 우리는 살아 나간다.

▪️

  • <바움가트너>는 삶의 끝에서 건네는 인사와도 같은 소설이다.

240페이지 정도의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깊이 있고,

마음에 잔잔히 오래 남을만한 이야기이다.

📚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분.

깊이 있는 문장의 소설을 찾는 분에게 추천하고,

폴 오스터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좋은 입문작이 될 것 같다.

그러니 궁금하셨던 분들은 얼른 읽어보시길 ) 👍🏻👍🏻 2025-04-25 21:44:34.375326
q*** 사랑하는 아내 애나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십 년. 그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홀로 살아가는 70대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이야기다.

인생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도, 감정을 숨긴 아버지 아래서도, 그리고 사랑을 잃은 깊은 슬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여전히 있고, 새로운 세계는 열리며, 또 다른 사랑도 찾아온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건,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폴 오스터는 삶은 잃은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조용한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2025-04-25 16:20:38.610918
s*** 삶의 마지막에서 나에겐 어떤 얼굴들이 떠오를까.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움가트너가 의자에 앉아 떠올리는 생각들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떠나간 이들과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새롭게 등장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떠나간 이들을, 특히 애나를 떠올리는 문장이 정말 슬펐고, 다정했고 따듯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그리움이 크게 느껴졌다. 짙은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어서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새로이 만난 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바움가트너의 모습을 보며, 그들이 큰 상실의 경험 이후에도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내가 먼저 떠나게 된다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만남이 계속되기를 바라게 되기도 했다.

-

(41)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69)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41) 또는, 어쩌면 더 적절한 것으로,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살펴본다든가.

(157) 그는 그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숭배했으며, 가끔 거의 사랑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어떤 것도 이해가 된 적은 없었다.

(166-167) 아니, 어머니는 말했다, 할머니를 미워하지 않는다. 가엽게 생각한다. (…) 두 번째 남편이 지저분한 인간이었던 게 분명해 - 자기가 사랑한다고 하는 여자가 자식을 두고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으니. 이 이야기에서 미워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네가 미워해야할 사람이야, 사이. (…) 적어도 나는 그 여자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거고 2025-04-25 15:30:18.122755
b***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는 그의 유작이라 더 끌렸는데요. 이 책은 은퇴를 앞둔 노교수가 새로운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였어요. 주인공은 10년 전에 아내를 잃고 환지통처럼 아픔을 안고 살고 있는데,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변화를 불러오는 과정임을 보여주죠.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상실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어요. 폴 오스터는 삶을 나무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강조하며 그만큼 인간관계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줘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상실이나 슬픔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엔 그저 아프고 힘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물론, 삶과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길 거예요. 2025-04-25 15:06:39.51489
b***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바움가트너의 의미는 독일어로 나무를 가꾸는 사람, 정원사를 뜻한다고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될 상실감,무력감,그리움 등 일상이라는 건, 삶은 그냥 주어지지 않고 행복이라는 것도 사실 특별하지 않다.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다. 그는 어느 날 한순간을 시작으로 아내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 과정들은 처참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저 간결하고도 산뜻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고 난 뒤 바움가트너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고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이 바움가트너라는 것도 참 의미있다 싶었다.

읽어보시길. 삶에 대한 폴 오스터의 그윽하고도 산뜻한 매력적인 책이다.

2025-04-25 14:15:40.125178
v*** 물론 자신의 진정한 관심은 이 통증의 생물학적 또는 신경학적 측면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고난과 상실의 은유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에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10년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래 바움가트너가 쉼 없이 찾고 있던 비유, 2008년 8월의 그 바람 많고 더운 오후 이래 그에게 일어난 일을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유사물이다.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서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p36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아내를 잃었다. 10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오늘 자신에게도 사고가 있었다. 계단에서 넘어지고 냄비를 까맣게 태워먹는다. 극심한 통증에 온갖 생각을 하다가 아내의 기억들이 계속 떠오른다. 그녀는 노교수의 일생의 사랑이였다. 평생을 같이 산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에게 너무나 충격적이고 힘든 일이였다.

은퇴를 앞둔 바움가트너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의 부재와 슬픔, 상실에 대한 따끔따끔한 아픔과 함께 떠올려지는 아내의 기억들은 온통 추억들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릴 적 기억들에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활자로 같이 떠나게 된 시간 속의 바움 가트너는 아이가 되었다가, 친구도 되었다가, 우리도 공감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이렇듯 이상한 하루에서 시작해서 기억과 추억, 고통과 삶을 요란하지 않게 묘사해주며 따라가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뛰어난 내면의 묘사는 평범한 시간을 보석처럼 만들어 주는 힘이 있었다.

폴오스터 가 투병 중에 끝을 예감하며 집필한 마지막 장편소설 이라는 바움가트너 는 마치 저자의 마지막 고백서 혹은 당부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의 아버지의 지난한 삶을 나열하면서도 꿈을 꾸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건너다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p242

하지만 거의 진짜, 죽어 버린 전화의 연결이 끊어진 선으로 죽은 아내가 자신에게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남자에게 부여된 기억의 힘이란 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p86

…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p151

2025-04-24 23:28:01.572409
o*** 유작인만큼 더 세심하게 읽어보려구요 2025-04-24 22:47:48.909787
m*** 열린책들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는 찬사 속에 데뷔한 작가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을 만나보았다. 작가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는 특별함에 넘버링(85)이 된 가제본이라는 특별함이 더해진 멋진 만남이었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와의 첫 만남은 작가의 분신처럼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이 바움 가트너라는 70대 교수가 안내해 준다. <바움가트너>는 70대의 노교수가 지나온 삶을 추억하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책이다. 250여 페이지의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그렇게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사이 바움 가트너의 전공이 철학인 까닭인지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긴 생각이 너무나 깊고 넓다.

이야기는 노인들이 겪게 되는 신체와 정신의 노화로 인한 작은 사고로 시작된다. 바움 가트너 교수는 노화로 온 건망증 탓인지 불에 올려놓은 냄비를 잊고 만다. 그리고 그 냄비를 맨손으로 잡으며 그날 첫 사고를 맞이한다. 그러고는 검침원을 지하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사고를 당한다.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들을 기점으로 주인공은 추억에 빠져든다. 이제 이야기는 20대의 바움 가트너가 등장하고 40년을 함께하다가 바다 수영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내 애나와의 기억 속으로 흐른다.

p.155. 옳은 선택이냐 그른 선택이냐는 없고, 둘 다 결국에는 그른 것이 되어 버릴 옳은 선택만 둘 있는 상황이었다.

애나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 결혼 그리고 이별. 너무나 가슴 아픈 이별에 바움 가트너는 그날 사고가 있기 전까지 아내와의 추억을 정리할 시간을, 여유를 갖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사고 이후 바움 가트너는 많은 철학적 사고들을 애나와의 추억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정리해 나간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아내와의 통화도 들려주고 외할아버지의 고향 이야기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의 슬픔을 알려준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오가며 현실과 꿈을 오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쩌면 폴 오스터라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죽기 전에 옮겨 놓은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착각이든 오해든 작가의 글은 엄청난 밀도로 이어졌고 그 속에 담긴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촘촘하게 이어지는 깊이 있는 사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철학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놓은 듯한 매력적인 책이다. 정말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담아 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바움 가트너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처음부터 끝까지 애나로 향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움 가트너가 들려주는 삶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길 바란다. 2025-04-24 19:39:32.968644
g***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책갈피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41p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67p

그런 식으로 책은 태어나기 시작했다, 바움가트너의 생각으로는. 그러니까, 인간 삶이란 외로움과 잠재적 죽음이라는 고속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통제 불가능한 차라는 독한 비전으로부터. 228p

🤍 감상 간단한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교수로 일했던 바움가트너는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애나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10년 전, 바다에서 아내를 잃고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흔이 된 바움가트너는 애나의 시를 사랑하는, 동시에 애나를 떠올리게 하는 코언을 만난다.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폴 오스터를 처음 접했다. 그의 유고작을 보고 그의 첫인상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바움가트너의 내적 진술과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기억 대부분은 아내와 관련되어 있다. 아주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바움가트너의 삶은 어쩐지 슬프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 소설에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상실과 애도, 그리움의 정서라고 생각한다. 바움가트너의 회상은 조금 복잡스럽고 헷갈리기도 한다. 두서없이 쏟아지는 말을 듣는 것만 같은. 하지만 집중한다면 그사이에 녹아든 그리움과 애도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비단 애나의 죽음뿐만 아니라 바움가트너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도 관련이 있다. 바움가트너는 그들과 함께했던 과거와 그들의 죽음을 하나씩 짚으며 회상을 이어 나간다.

나는 이 소설이 바움가트너의 삶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스쳐 지나간다는 단어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으나, 달리 생각하면 스쳐 지나간 것들에도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바움가트너가 회상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가장 마지막 문장인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는 말은 과거의 흔적을 딛고 나아가는 특별한 순간으로 느껴진다. 상실과 애도의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2025-04-24 18:43:58.407787
e*** ☁️🌷✨ 아내를 잃은 상실의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던 바움가트너, 끝내 희망의 빛을 가슴에 품고 삶과 화해해가는 고요한 영혼의 귀환

📘아내를 잃은 고독한 노교수 바움가트너. 아내가 글을 쓰던 방을 둘러보며 그녀가 쓰던 원고를 정리한다. 그곳에서 젊었을 적 아내가 썼던 원고를 시작으로 그녀의 인생과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내와 그의 젊은 시절, 그리고 아내를 잃은 후 삶에 방황하는 모습과, 방황을 극복한 후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 고요한 그의 인생을 들여다 볼수 있는 소설

+

📖31p. 저게 시작이었다. 그는 혼잣말을 한다. 오늘의 첫 사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사고가 생겨나는 바람에 끝없는 사고록 얼룩진 하루가 되어 버렸지만, 거실 맞은편의 시커메진 알루미늄 냄비를 계속 보고 있자니 생각이 오늘 아침의 무언극에나 나올 법한 어처구니없는 실수들로부터 과거, 기억의 바깥 가장자리에서 깜빡이는 먼 과거로 천천히 흘러가, <그때>라는 사라진 세계가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세상에 나온 지 갓 20년 된 몸 안에 들어가 있다.

📖41p.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61p. 그는 발을 바닥에 딱 붙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위태로운 내적 공간에 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두 손에 감당할 수 없이 넘쳐나는 시간을 들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

💬잔잔한 이야기들이 스며들어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의 결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은 울림을 담아내는 소설… 고요한 물결로 다가와, 독자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머무는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04-24 17:17:19.810766
e*** 폴오터의 마지막 작품을 읽게되어 참좋았습니다 특히 완제본이 나오기전의 가제본을 읽는 느낌은 더 색달랐어요 바음가트너를 통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일생의 시간들을 이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된 계기가 된것같아요 아마 이책의저자 폴오스터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정리하듯 이책을 쓴것같아 마음이 아려왔던 독서였던것걑아요 2025-04-24 15:29:14.527612
o*** 폴 오스터 / 바움가트너

죽음 앞에서의 마지막 이야기

뉴욕 3부작, 달의 궁전, 4 3 2 1 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미국 문학의 거장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 는 암투병 중 집필한 작품으로, 소설 주인공 바움가트너라는 이름을 빌려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유작이자 고백이다.

소설은 십 년 전,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사고로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반복되는 애도의 시간 속에 갇혀 살아가던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이상한 사건들이 겹쳐진 어느 날, 자신이 태워버린 알류미늄 냄비를 바라보다 문득 아내의 기억에 잠식되고, 그 기억은 그의 삶을 되짚는 여정을 열어젖힌다.

바움가트너는 애나의 서재에 들어가 그녀가 남긴 서류와 원고를 훑어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생전에 남긴 마지막 글을 통해 말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바움가터는 애나가 죽은 뒤 손에 놓았던 펜을 다시금 쥐게 된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그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허망함, 사랑과 애도의 감정을 정리하게 된다.

애도의 시간은 늘 그렇다. 영화처럼 눈물 흘리고 무너지는 장면보다는, 평범한 일상이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쌓여간다. 이제는 없어야 할 사람이 아직도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순간들, 그것이 진짜 슬픔이다. 바움가트너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도, 잃어버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녀와 여전히 대화하고, 기억하며, 심지어는 그 사람을 닮은 꿈을 꾸고, 다시 깨는 사람이었다.

아내와의 사랑, 과거의 상처,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이야기들.

사랑은 기억 속에서 빛나고, 상실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또다시 사랑을 꿈꾼다.

아픈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소설이다.

출판사 열린책들 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2025-04-24 12:43:09.903312
e*** 폴 오스터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라 읽어볼 의미가 깊어요! 바로 작년에 돌아가셨다니..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아내를 잃고 살아가던 노교수의 이야기인데요. 읽으면서 바움가트너가 느끼는 상실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상실에 무너지기만 하는 게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사랑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삶의 진면을 잘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삶을 다시 느끼는 그의 열정적인 고독.. 특히 저는 아내의 과거 글들과 그걸 기반으로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인상깊었습니다! 추천!! 2025-04-24 12:09:53.209094
g*** 바움가트너 도서협찬

폴오스터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67p.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123p.

폴 오스터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는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가 생의 끝에서 아내의 빈자리와 상실, 지난 시간에서 길어올린 반짝이는 생애의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이름과 같이 삶의 단편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은 마치 정원을 이루는 나무들의 가지 끝을 더듬어가는 듯하다.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만나 40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사고로 아내를 먼저 보내야 했고, 혁명 실패자였지만 양장점의 주인으로 자신의 삶을 일궈낸 아버지에 대한 회상 등은 상실을 통해 찾아오는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영원히 사라지는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머리에 맴도는 생각이기도 했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꽤 소장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처음 읽어보게 되었으니 소장 중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애틋한 사유를 전하는 폴 오스터의 빛나는 최종 장, 느리게 천천히 사유하며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흔히 말하는 영원히 젊은 부부, 결혼한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떠안는 책임이나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아이들 한 쌍, 종종 동정받고 가끔 부러움을 사는 바움가트너와 블룸, 자식이 없기 때문에 오직 서로와 자신들의 일을 위해 살게 되는 불임 부부가 되었다. 바움가트너에게는 애나와 함께 산 그 모든 세월 내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 것 이상이었다. 104p.

그에게는 엄숙하지만 의기양양한 순간, 평생 다른 어떤 때와도 다른 시간이다. 감정의 큰 파도가 일어 정신이 강인하고 때로는 마음마저 차갑고 단단한 이 남자를 삼킨다. 그의 내장에서 대양이 일렁이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를 끌어내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마흔두 살에 마침내 아버지라, 그는 생각한다. 151p.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을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184p.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게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 확실치 않을 때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199p.

가제본서평단 열린책들 정영목 옮김 소설 소설추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2025-04-24 03:16:01.945929
w***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열린책들 가제본서평단

폴 오스터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유작으로

정원사라는 의미의 독일어에서 온 이름 바움가트너는 일생을 삶을 글로 가꾸워 왔는지도..

시인이었던 아내를 떠나보낸 바움가트너 아내가 남긴 시와 가트너의 일생의 기록들을 이야기하며 삶속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상실과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바닥이 타버린 냄비에 손이 데이는 일부터 아내가 사용하던 타자기를 바라보는 그리움에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이제는 혼자서 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한 슬픔이 묻어나다가도

떠나보낸 아내를, 아내가 남겨둔 흔적들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돌아서 남아있는 삶에서 연루된 사람들과의 살아냄을 통해 그리움보다는 담담함을 거기에 더한 삶을 살아내는 고통을 헤처나갈 길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운이 좋아 다름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되요.“ p123

이제는 떠나고 곁에 없는 누군가를 (예를들어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당시에는 그 죽음과 함께 모든것이 끝나버린 깊은 절망에 허우적 거리게 될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삶은 단지 그 죽음만 있는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일과 관계와 의무가 뒤따르는거였다. 💭 계속 끌어안고 그리워하고 살아갈 것같던 내일상은 너무나 평온하고 밥도 잘먹고 가끔은 잠시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고 죄스럽고 놀라기도 했었다. 대신 함께 한 세월에서 온 습관과 버릇들이 닮아 내곁에 남아 있었다.

남겨진 가트너는 아내에게는 작별을 고하는 시간을 마무리하며 자신도 곧 떠나게 될 시간들을 회고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위트있게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 다소 번역에서오는 쎈 언어와 표현에 슬픔마저도 놀람과 웃음으로 승화시켜주지 않았나 싶고…

🗯 변명하자면 철학적이고 완급조절 너무 잘된 직선의 글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편이지만 독자들이 극찬하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걸 폴 오스터의 작품을 통해 조금은 발견하지 않았나..만족해본다. 어쩌다 넘버링 18번^^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살펴본다든가.. 2025-04-24 00:49:12.297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