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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정보

  • ISBN : 9788960907775
  • 출판사 : 마음산책
  • 출판일 : 20221025
  • 저자 : 양영희 외

요약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끝나지도 않아”영화와 책으로 만날 수 없는 가족을 잇다〈수프와 이데올로기〉 국내 개봉에 앞서 양영희 감독과 마음산책은 긴밀히 산문집 구상에 들어갔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아버지 - (분신과도 같은 조카 선화를 포함한) 북의 가족들 - 어머니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번 책에는 영화 바깥의 뒷이야기와 촬영 에피소드,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일화들까지 더해지면서 가족 다큐멘터리 3부작의 진정한 완성을 이루었다.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계가족에서도 벗어나고 싶은데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라니, 제정신인가. 아버지의 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 놈, 일본 놈, 조선 사람」 중에서, 31쪽 〈디어 평양〉을 공개하자 조총련은 북한을 부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사과문을 강요하지만, 이를 거부하자 북한 입국을 금지한다. 양영희는 분노와 반발심을 응축시켜 4년 뒤 보란 듯이 사과문 대신 〈굿바이, 평양〉을 발표함으로써 부당한 조치에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천명한다. 감독은 작가의 말에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끝나지도 않아. 아무리 귀찮아도 만날 수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다”라고 썼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도 가족은 연결되어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4.3은 특별해”개인의 비극을 넘어선,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전작들에서 가족과 일가친척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으로 등장하다, 2018년이 되어서야 덮어두었던 기억의 뚜껑을 열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나고 자랐지만 1945년 오사카 대공습을 피해 제주도로 건너갔다. 열여덟이 되던 1948년 4월, 제주4.3사건의 끔찍한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한 뒤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밀항선에 올라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어머니는 그 이후로 마음속에서 남한의 존재를 지운 채 살아간다.연고라고는 없던 북한을 지지하고 맹목적으로 조총련 활동을 하던 부모에 대한 의문은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이르러서야 풀린다. 한국에서도 오랜 시간 금기시되어온 제주4.3사건은 한 가족의 삶에, 나아가 한반도와 재일코리안의 역사에 거둘 수 없는 잿빛 그늘을 드리웠다. 한국에서 찾아온 제주4.3연구소의 연구자들 앞에서 증언을 마친 그날 이후, 어머니의 알츠하이머는 급속하게 진행된다. 여기에 타이밍 좋게 등장한 아라이 카오루라는 존재는 가족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친 양영희에게 새로운 가족을 선사한다. 조선 국적의 어머니, 한국 국적의 딸, 일본 국적의 남편. 세 사람이 함께 뜨거운 닭 백숙의 수프(국물)를 나눠 먹으면서 꽁꽁 언 이데올로기는 비로소 녹아내린다.양영희 감독이 전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기록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과거를 똑바로 마주하고,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애쓰고, 미래의 희망으로 이어가겠다는 그의 다짐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 시대와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는 관객과 독자들에게 원형적 정서를 체험케 할 것이다.

● 박찬욱, 고레에다 히로카즈, 김윤석, 양익준 극찬 다큐멘터리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감독 양영희 국내에서 가장 먼저 출간하는 산문집

가족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 극영화 [가족의 나라]로 비통한 역사의 희생양이 된 가족을 그려낸 영화감독 양영희가 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 개봉에 맞춰 산문집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를 선보인다. 두 편의 자전소설 가족의 나라와 조선대학교 이야기朝鮮大?校物語는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었으나, 이번 책은 한국에서 기획해 한국에서 처음 출간하는 산문집이다.

저자 양영희 감독은 조선인 부락이라 불리던 오사카시 이카이노(현 이쿠노구) 출신 재일코리안 2세로, 열렬한 조총련 활동가 부모 밑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세 오빠를 이른바 귀국 사업으로 북에 떠나보낸 아픔이 몸에 새겨진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을 괴롭힌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원동력 삼아 가족의 이야기를 캠코더에 담기 시작했다.

22쪽내 기억 속 이카이노는 여성들이다. 이카이노에 사는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딸들은 제주도와 경상도, 오사카 사투리로 말했다. 뼈 빠지게 일하고 호탕하게 웃던 그녀들 뒤에는 가혹한 역사가 감춰져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둘 것을, 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더 파헤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38쪽아이들을 북에 보냈다는 사실을 후회할 여유는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세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졸업한 다음에 건강히 일할 수 있도록,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가족들이 웃는 얼굴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살겠노라 다짐했다. 손주들이 태어나자 어머니의 결심은 신념이 되고, 다시 집념이 되었다. 무언가에 씐 것처럼 소포를 보내고 북을 방문하는 어머니에 아버지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51쪽가족과 마주하기. 딸이라는 역할에 갇힌 상태에서 이 소박하고도 장대한 과업에 임하기란 심히 어려웠다. 캠코더라는 장치의 힘을 빌려서 속내를 숨긴 관찰자, 인터뷰어, 감독이라는 역할을 스스로 부여함으로써 발을 내디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찍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어디서 왔는지 파헤치는 행위다. 고통을 수반하는 딸의 행위에 한 번도 그만두라는 말 없이 렌즈를 받아들이는 데 얼마큼의 각오가 필요했을까.85쪽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130131쪽내 귀를 의심했다. 아주 일반적인, 사건성이라곤 없는 평범한 질문에 맥이 빠졌다. 이 아이는 이런 질문을 하려면 캠코더를 꺼야겠다고 판단했구나. 고작 연극에 관한 대화일 뿐인데 녹화가 되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춘기 소녀가 이렇게까지 위축되어 살아가야 하는 감시 체제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민감하게 상황을 의식하는 아이에게 계속 렌즈를 들이댄 나의 무신경함이 부끄러웠다. 선화가 살아가는 불합리한 사회를 떠올리자마자 마음에 그늘이 드리웠다.173174쪽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192쪽살아가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픈 상황들을 조우한다. 그 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할 때 기적 같은 장면이 탄생하고, 그 작품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잔인한 이야기다. 이제 와 무슨 말인가 싶지만.197쪽어떻게든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넣어야 했다. 나 자신과의 결별로서, 새롭게 걸어나가기 위한 생의 마디로서. 낡은 시대에 고하는 결별이자 가족과의 결별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냅시다!라는 결별. 평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을 리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에 가족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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