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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지은 집

정보

  • ISBN : 9791170401544
  • 출판사 : 열림원
  • 출판일 : 20230113
  • 저자 : 강인숙

요약

단칸방 신혼집에서 각자의 서재가 있는 집에 이르기까지,더 나은 집필 공간을 찾아 떠나고 머문 불가피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부부에게는 집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셋이었다. 부부에게는 그냥 집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방이 많은 아주 큰 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도 집도 하나도 없는 텅 빈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지었다. 평창동 499-3.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한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해로 1974년을 기억한다. 남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준 해였다. 이어령은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글로 지은 집은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서재를 갖춘 집을 갖기까지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다. 신혼 단칸방부터 이어령 선생이 잠든 지금의 평창동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의 역정이 담겼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 떠나고 머문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했던 부부의 삶이 강인숙 관장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책은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어령 선생이 그야말로 글로 지은 집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령 선생과의 결혼식 날 풍경, 집을 찾은 여러 문인과의 추억, 동네 한복판에서 두 눈으로 목도한 4.19와 5.16 역사의 현장, 이어령 선생의 집필 비화 등이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세상에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때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때였다.이어령 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었다.”이어령 선생은 2015년 대장암에 걸렸다. 생명에 시한이 생기자 선생은 조급해졌다. 쓰다가 끝내지 못한 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갈망했다. 아내인 강인숙 관장도 절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삶을 정리해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구십이 되어가는 동갑내기 부부가 하나는 아래층에서, 하나는 위층에서 글을 쓰면서, 각기 자기 몫의 아픔과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네 것과 내 것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부부 관계이니 혹시라도 남편을 다치게 할까 봐 마지막까지 손이 떨렸다.” 서문에서이 책은 어디까지나 강인숙 관장의 입장에서 쓴, “한 신부가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나만의 방이 있는 집에 다다르는 이야기”다. 강인숙 관장은 서문에서, 남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 글을 쓰면서 혹여라도 그를 잘못 읽었을까 봐 조심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깊숙이 알 수 없었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의 빛나던 청춘과, 평생 쉬지 않았던 치열한 배움의 삶과, 한 가정의 남편이자 평범한 아버지였을 그가 뚜벅뚜벅 걸어온 길을 비로소 따라가볼 수 있기에, 이 책의 출간이 더없이 고맙고 반가울 수밖에 없다. “둘만 남는 세월이 왔다.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프고 외로웠다.우리는 그 외로움을 공부하고 글 쓰는 일로 메꾸어갔다.”책은 이어령 강인숙 부부가 십육 년 동안 거쳐간 여덟 곳의 집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오 년이나 사귀어보았으니, 결혼할 것이 아니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화들짝 놀라 빠르게 계를 들어 마련한 보잘것없던 성북동 골짜기의 셋방, 머리맡에 놓은 어항 속 붕어가 얼어붙을 만큼 냉골이었던 삼선교 북향 방, 이어령 선생이 사온 철 이른 수박을 먹으며 가슴 충만하게 첫 아이를 기다리던 청파동 1가, 4.19와 5.16을 동네 한복판에서 목도하며 동조를 갈망했던 청파동과 한강로 집 시절, 저자에게는 사중고가 겹친 힘든 시기였지만 이어령 선생은 좋은 글이 많이 나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신당동 집에 얽힌 기억, 박경리 선생ㆍ김지하 시인과 왕래하던 성북동 언덕 위의 이층집, 그리고 부부에게 마지막 쉼터가 되어준 지금의 평창동 499-3.가족이 늘고 글이 늘고, 그래서 북적였고 따뜻했고, 그러다가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펐고 쓸쓸했던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책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 단칸방 신혼집에서 각자의 서재가 있는 집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북적이고 때로는 쓸쓸했던 이어령 강인숙의 64년 부부 일지

부부에게는 집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셋이었다. 부부에게는 그냥 집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방이 많은 아주 큰 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도 집도 하나도 없는 텅 빈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지었다. 평창동 499-3.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한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해로 1974년을 기억한다. 남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준 해였다. 이어령은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글로 지은 집은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서재를 갖춘 집을 갖기까지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다. 신혼 단칸방부터 이어령 선생이 잠든 지금의 평창동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의 역정이 담겼다. 1958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떠나고 머문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했던 부부의 삶이 강인숙 관장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책은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어령 선생이 그야말로 글로 지은 집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령 선생과의 결혼식 날 풍경, 집을 찾은 여러 문인과의 추억, 동네 한복판에서 두 눈으로 목도한 4.19와 5.16 역사의 현장, 이어령 선생의 집필 비화 등이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우리는 둘 다 남편이나 아내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방에서 떠들다 헤어지는 관계가 훨씬 애틋하고 간결했기 때문이다. 결혼에는 성과 돈이 끼어들어 번거로워진다. 양가의 가족들과 뒤엉겨 삶이 복잡해지는 것도 달갑지 않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본질적인 변수가 자꾸 생겨나서 생활을 늪지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공인된 방법이 결혼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통적인 보통 가정에서 자라나서 우리는 둘 다 관습과 규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남 하는 의식을 생략하고 과감하게 동거 생활을 시작하는 흉내 같은 것은 낼 용기가 없는 상태니 결혼식을 올리는 것밖에 같이 있을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그냥 계속 같이 있고 싶었고, 아기도 낳고 싶었다. 결혼은 그 두 가지가 용납되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었다. 집1. 성북동 골짜기의 단칸방에서연재는 한강로 집을 떠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어서, 그는 수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글을 써야 했다. 이사 간 다음 날도 그는 글을 썼다. 아기가 태어나던 날도 마찬가지다. 집수리가 덜 끝나서 한동안은 침대 매트리스를 이 방 저 방으로 끌고 다니면서 그 위에 밥상을 올려놓고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써야 했다. 그렇게 노상 글을 써야 해서 그에게는 서재가 필요했다. 내가 그의 서재를 치외법권 지대처럼 일상 세계와 격리시키려고 기를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쩌면 나는 힘들고 번거로운 일을 대신 해서 그의 글 쓰는 시간을 늘려주기 위해 서둘러 결혼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학교에 나가면서 연재를 계속했기 때문에 언제나 피곤했던 것이다. 집6. 신당동 304-194에서그 집은 우리가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 가장 많은 가족이 살던 집이기도 했고, 가장 오래 산 집이기도 했다. 우리는 마흔한 살부터 일흔넷이 되는 2007년까지 삼십삼 년의 세월을 그 집에서 살았다. 삶의 전성기를 거기에서 보낸 것이다. 세 아이의 결혼식도 그 집에서 치렀다. 그리고 여덟 손자의 돌잔치도 거기서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축복도 거기에서 받은 것이다. 우리는 열여섯 명의 대가족이 되어 그 집에서 북적거리며 살았다.그러다가 둘만 남는 세월이 왔다. 1993년부터 우리는 신혼 초처럼 둘이만 그 집에서 살게 되었다. 둘이 시작한 집에 둘이 남았으니 원상으로 돌아간 셈인데, 세상이 다 빈 것같이 늘 헛헛했다. 아이들이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프고 외로웠다. 집8. 평창동 이야기에서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반세기가 가까워온다. 이어령 씨의 장엄한 반세기가 평창동 499-3에 담겨 있다. 머지않아 그이와 나는 걷는 일이 어려워질 것이다. 머지않아 그이와 나는 쓰던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사는 일에서 손을 놓을 것이다. 신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평창동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우니 어느 철에 가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송홧가루가 시폰chiffon 숄처럼 공중에서 하느작거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집8. 평창동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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