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 ISBN : 9791192638072
- 출판사 : 안온북스
- 출판일 : 20230131
- 저자 : 구병모
요약
구병모 소설의 너른 지평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재밌게 읽고 나서야 그 소설의 규모와 숨겨진 의도를 알고 감탄하게 하는 것은 여느 소설가들도 탐내는 구병모 작가의 장기일 것이다.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주제들은 언제나 작가의 몸을 통과해 이야기와 인물을 입고 그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첫 작품 〈화장花粧의 도시〉는 태어나자마자 몸에 심겨진 나노 시드가 그 사람이 죽은 이후 꽃으로 피어나면서 그 삶을 증명한다는 어느 도시의 장례 정책을 통해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양면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반드시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이 없듯이 선악을 가르는 일에는 또 다른 사회적 모순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레토릭을 구현한다. 〈신인神人의 유배〉는 나스카 지상화의 탄생에 대한 거대한 상상이다. 신비한 자연 현상에 숨겨진 절대자와 신인의 대척 국면이 한 편의 이야기를 쌓는다. 〈영 원의 꿈〉의 나는 도서관에서 뜻밖에 매몽買夢을 청하는 이를 만나 별다른 의미가 없는 꿈을 팔게 된다. 생활비로도 쓰고 집세로도 쓰면서 안락을 누릴 즈음 더는 간밤에 꾼 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허탕을 반복하던 중 또 다른 꿈, 자신이 꿈꾸었으나 펼치지 못한 꿈을 말하게 되고, 그 잃어버린 꿈에도 값을 매기는 이야기가 꿈처럼 펼쳐진다. 〈동사를 가질 권리〉는 이 책의 제목 입숨 로렘의 책의 힌트를 주는 작품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소설에 대한 도전, 정형화되지 않고 잡히지 않는 소설을 좇는 의지가 엿보인다. 〈날아라, 오딘〉의 나는 전쟁에 동원될 개를 훈련하며 그들에게 어떤 감정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잔인한 생체 실험용으로 쓰이거나 대전차 폭탄으로 쓰일 녀석들을 굳이 사랑할 필요는 없다는 다짐은 오딘의 출전을 앞두고 위기를 맞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이입하게 하는 생생한 소설적 전치술이 숨겨져 있다. 〈예술은 닫힌 문〉은 오늘날 미디어를 휩쓴 각종 오디션 예능의 비정함을 극대화시킨 소설이다. 현실의 오디션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의 오디션은 생과 사를 다투는 전장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90초. 게다가 예술적 성취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심사위원들과의 소설적 대치가 인상적이다. 〈입회인〉은 중세 시대의 결투 제도가 부활한 미래를 그린다. 절차가 복잡하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법 집행이 아닌 사적인 처벌을 원하고 행하는 사람들. 나는 그러한 결투의 당사자만큼 중요한 역할을 행하는 입회인으로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는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24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밀착 묘사한다. 세입자인 나는 아이가 태어나 육아와 집안일을 온전히 맡게 되었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내놓은 지 한참 되었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고 한겨울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집에 찾아와 집에 쥐가 득시글하다고 주장한다. 실재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려 하는 관리는 여느 행정력 이면의 폭력성을 눈앞에 그려낸다.〈롱슬리브〉는 남들보다 눈에 띄게 팔이 길어 놀림감이 되거나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특성을 가진 친구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이야기다. 잠시잠깐 신의 실수로 태어나게 된 것 같지만 그것은 두 팔로 큰 그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현현인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의 주인공 원은 “신의 사전을 훔쳐서 나온 천사”다. 원은 거대한 사전에서 어떤 단어를 지워버려 더 나은 세상을 인간에게 주고자 한다. 공격, 고독, 오염과 같은 단어를 신의 사전에서 지워내 그 단어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더 좋은 공동체가 될까를 생각하게 한다. 〈누더기 얼굴〉은 투명인간이다. 은유로서의 투명이 아닌 물리적 투명인간인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특성을 활용해 정의와 공익에 보탬이 되려고도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다. 나는 이제 남들과 같은 얼굴을 갖고 싶다. 하지만 본래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없으므로 가능하지 않다. 〈지당하고도 그럴듯한〉의 나는 소설가다. 출간 작업을 하며 소설을 고쳐나가는, 픽션이 분명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작가 구병모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당하고 그럴듯하다고 믿는 모든 것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 〈시간의 벽감壁龕〉은 시간을 통과하여 공간처럼 이동할 수 있는 펜던트가 개발되었고 100년 뒤의 참담을 목격하였지만, 인간은 미래의 절망을 엿보았다고 해서 자신의 현재를 반성하거나 조율하는 존재가 아님을 목도하게 한다. 이렇게 구병모 작가는 미니픽션이라는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규격에도 불구하고 영토와 시간, 인간과 신의 경계를 무참히 가로지르고 단숨에 제압해 소설 한 편의 완성도와 가능성은 규모로 결정할 수 없음을 증명해낸다. 그렇기에 짧은 소설이라고 해서 그 품이 덜 드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거대하고도 세밀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이 책에는 작품의 시작점과 쓰고 난 후의 소회 등을 담은 작가 노트가 작품마다 더해져 읽는 묘미를 더한다. 우리는 구병모 작가가 가진 소설적 역량을 이해하면서도 때론 오해했고 지당하고도 그럴듯하다고 믿는 근거로 부당한 요구를 더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작가 구병모의 너른 지평과 진수를 한 권에 담아낸 《로렘 입숨의 책》과 함께 짧음 위로 켜켜이 더해진 구병모만 깊이를 한껏 누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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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은 제 어깨의 날개에서 깃을 하나 뽑았다. 그 팽팽하고 두꺼운 깃으로, 대지에 힘을 주어 돌바닥을 천천히 긁어내기 시작했다. 신인에게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보장되어 있었으므로 조금도 서두를 것 없었다. 이제 막 연주를 시작하여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의 마디와 소절이 남은 음악과도 같은 리듬으로, 특별한 기교 없이 붓을 대었으나 우연히 만난 점과 선에서 경이를 포착한 화가와도 같은 몸짓으로. 신인이 그어 나가기 시작한 선은 언뜻 보기엔 무정형으로 뻗어나갔다. 〈신인神人의 유배〉에서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바란 것은 있는 힘을 다해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그 자신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작가가 제각기 싸지르거나 게워낸 모든 글은 로렘 입숨의 무한 변주 반복에 불과할지도 몰랐고, 글을 쓰면 쓸수록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아무거나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졌으며,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비로소 그 무엇도 쓰지 않음-세상에 어떤 글도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궁극의 글쓰기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적보다 완벽한 음악이 없듯이, 점 하나 찍지 않은 흰 도화지가 화려한 그림을 압도하듯이, 태어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삶이듯이. 〈동사를 가질 권리〉에서 너는 이제 그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멀리 달아나도 좋다. 아니 달아나야만 한다. 달리는 발에 한계가 있으니 부디 날아갔으면 좋겠는데, 신의 보살핌이 없이는 너나 나나 그런 일은 불가능하겠지. 우리는 모두 유한하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한 개체. 〈날아라, 오딘〉에서쥐라는 생물이 멸종을 한 게 아니니 당연히 어딘가에 많이들 살고 있을 테고, 사람의 문화와 문명이 그것을 이부자리나 식탁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최소한 사람들의 눈에 덜 띄게끔 관리했을 뿐이었다. 선량한 시민의 삶을 위협하지 않도록, 그것들이 없는 척, 그것들이 살아 있다는 걸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말하자면 관리 실패였다. 아기를 키우는 집에 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 상승으로 인해 집주인은 다음번에 전세금을 대폭 올릴 예정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대출을 받을 조건이 되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에서그 애는 어른이 되면 두 팔을 벌리고 선나무가 될지도 몰랐다. 깜박 졸던 신의 실수로 식물의 유전자를 가진 무언가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처럼. 두 팔로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고, 머잖아 그것이 하늘까지 뻗어 올라갈지도. 〈롱슬리브〉에서말을 가진다는 것은 신이 된다는 뜻이다. 말을 남용하다 보면 자신이 언젠가는 그 말을 가졌다고 착각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신이 될 날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고 실은 이미 저마다 신을 참칭하며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없애는 것은 인간 사회의 불의와 불편을 덜어내기도 할뿐더러 그들을 궁극적으로 신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원은 실패가 이어진 데 대해 조금도 낙담하지 않고 다음 도시로 나아간다. 세계는 넓고 도시는 많다. 어쩌면 신의 사전에 등재된 말들을 모두 지울 때까지 이 세계의 도시는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에서
#로렘 입숨의 책